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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조용히 하렴.
네가우는 소리를,그가 들을테니까.
새하얗게 점멸하는 불빛이 눈을 파고들었다. 반사적으로 들어올리려던 손목이 철그럭 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다시 가라앉았다. 살짝 들어올린 눈꺼풀 사이로 꺼졌다, 커졌다 반복하는 빛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핥자 비린 피맛과 함께 바짝 말라 꺼끌한 각질들이 느껴졌다. 아무 생각없이 눈을 깜빡깜빡 뜨고나서야 누군가 제가 누운 침대의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어났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기다렸다는듯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창가에 걸터앉아있는 그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에 아슬하게 걸친 채 앉아있었다. 씨익 말아올리는 입꼬리가 눈에 익었다. 옅게 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안녕, 천사님."
그는 누워있는 정구에게 이미 여러번 마주친 것처럼 말을 걸었다.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의 눈은 부드럽게 접혀있었다.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는 담배를 쥐지않은 오른손을 침대 옆의 협탁으로 뻗었다. 정구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옅은 하늘 색의 셔츠가 당겨져 그의 손목이 드러났다. 십자가 모양의 문신이 그의 고동소리가 울리는 손목위에 새겨져있었다. 뻗은 그의 손이 잡은 것은 깨끗한 물이 든 유리컵이었다.
"목 마를거야. 그렇지?"
또다시 나른한 미소를 띄운 그가 물컵을 제 입술로 가져가며 말을 걸었다. 정구의 눈썹이 약간 찌푸려지자 그는 컵안의 든 물을 한모금 마시더니 창문턱에 걸터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담배를 협탁위로 올려둔 그가 두어발자국 걸어 정구가 누워있는 침대 앞에 섰다. 목을 아슬하게 덮은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렸다. 정구의 시선이 그의 손에 쥐어진 유리컵에서 그의 눈으로 옮겨갔다. 그의 눈꼬리가 웃고있다. 그의 눈은…
"깃털을 나한테 줄 땐 언제고, 나를 피해다녔어. 천사님."
…증오로 빛났다.그는 정구의 옆구리쪽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씩 웃으며 누워있는 이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던 그는 천천히 물컵을 정구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입술 안으로 물이 흘려들었고, 정구는 그것을 마셨다. 포도주. 쓴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가슴 위로 짚은 손가락이 물컵을 떼어낸 뒤 빙글빙글 돌리는 손짓에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네 심장은 여전히 내꺼잖아. 네가 줬으니까."
왼쪽 가슴, 약간 아래로 올려진 그 검지손가락은 이제 위치한 그 자리를 쿡쿡 찔렀다. 그의 얼굴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구는 어느 순간 사라진 손목의 무거운 느낌에 상체를 일으켰다. 단박에 가까워진 거리에 그는 다시 웃었다. 정구는 제 가슴팍을 찌르는 손가락을 잡아챘다.
"나는 당신때문에 떨어졌는데. 당신은 나한테 자꾸 그럴거야?"
이번엔 사랑에 빠진 눈빛. 제 사랑에게 투덜거리는 말. 사랑에 걸려든 이의 귀여운 투정.정구는 그 팔을 당겨 안았다. 키득거리는 웃음이 어깨를 적셨다. 제 목덜미를 따뜻하게 데우던 입김사이로 차가운 입술이 닿았다. 낙인처럼 박히는 그 뜨거움을 예전부터 알고있었다.
"사랑한다고 그랬으면서. 천사는 거짓말은 안한다며."
이번엔 그 팔이 어깨위로 둘러져 얼굴을 드러냈다. 입술 위로 입술을 맞추며 눈을 바라본다. 정구는 달려온 그 날들이 빛바랜 것처럼 스치는 기억속에서 하나같이 저를 따르던 그림자를 떠올렸다. 그게 너였지. 나를 사랑한 너였지.
"내가 울면 넌 나를 사랑한다고 그랬잖아."
그가 울었다.정구는 마침내, 웃을 수 있었다.
가여운 천사여, 너는 악마에게 홀려 타락했구나.
-
눈을 감으렴.그가 너를 본단다.천사의 물을 조심하렴.그것은 악마의 포도주가 된단다.악마의 거짓말을 조심하렴.그는 너와 똑같이 생겼단다.네가 날개를 잃고 떨어질 때면 그 곳엔 악마가 있단다.네가 웃을 때면 악마는 운단다.너의 증오는 그가 사랑해마지 않는 것.너의 사랑은 그를 감화시킬 수 없단다.그는 사랑을 몰라.그의 거짓말을 조심하렴.그의 모든 말은 녹아 없어지는 사탕이란다.네가 사랑에 빠질 때면 그는 네게 속삭일거야.
네가 울 때면 악마는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