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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x

[정구석율/종수석율] roads 2 본문

2016 미생/율른 겸 자공자수

[정구석율/종수석율] roads 2

hehlocx 2016. 6. 29. 13:29


pc버전에서 들어주시면 반복/자동재생됩니다.




















집에서 조금 걷다보면 작은 놀이터가 있다. 그네 두개에 미끄럼틀 하나. 이제는 어린 애들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그 놀이터는 스쳐가는 사람만 많을 뿐, 그 곳에 머무르거나 잠깐 서있는 사람도 없었다. 종수 또한 그랬다. 야자까지 끝난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땐 가끔 가로등이 켜져있는 그 곳을 힐끔 울타리 사이로 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곳은 담배를 피는 일탈의 무리도 없었다. 제법 싸늘한 바람에 흔들리는 그네 외에는 모두 정적이었다. 어느 때처럼 지나치던 그 곳에서, 종수는 그를 봤다. 그는 아무도 없는 놀이터 그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 안녕.”


눈꼬리가 금새 휘어진 그는 교복차림의 종수를 보더니 허리를 굽혀 손에 들고있던 담배를 바닥에 지져 껐다.


석율은 한 손에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들고, 한 손에는 작은 MP3를 쥔채 서 있는 종수에게 손짓했다. 와서 앉을래?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 눈을 못떼던 종수는 말없이 걸어 그 옆의 그네에 앉았다.


“야자끝나고 집 가는 길이야?”


종수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향한 곧은 시선에, 종수는 괜히 마른 침을 삼키고, 이어폰을 꼼지락거리며 시선을 떨구었다. 그는 그네를 조금 움직였다. 저를 향했던 시선이 하늘로 향했음을 알아차린 종수는 다시 그를 쳐다봤다. 멍하게 걸린 시선과 그 아래로 쭉 뻗어져 나오는 코, 그리고 … 입술.


“정구는 집에 있어.”


“그럼 여기서 뭐하는 건데.”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에 종수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종수는 땅을 보았다. 신고있던 신발의 앞코를 보았다. 그 자식이 어디에 있던 종수는 별로 알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석율은 종수가 반말을 하든 존댓말을 하든 별로 신경쓰는 것 같지 않았다. 종수는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애인있어?”


종수는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석율은 하늘을 보지 않았다. 그 시선의 끝은 종수였다. 종수는 다시 제 신발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잘생겼는데 왜 없어. 애들 눈이 삐었네.
석율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종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종수는 고개를 약간 크게, 끄덕였다. 종수가 끄덕이는 고갯짓에 석율의 웃음이 짧게 터졌다. 많이 좋아하나봐. 종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네를 조금 앞뒤로 움직였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석율은 마치 익숙한 것처럼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진짜 잘생겼다. 나한텐 눈이 부실 정도로.”


다시 고개는 올라갔다. 아직까지도 석율은 종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종수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종수를 쳐다보되, 그 시선의 끝은 종수가 아니었다. 한동안 얼굴만 마주보다 그것을 알아차린 종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 말 없이 종수를 쳐다보던 석율은 웃었다.


“안 놀라네. 좋아하는 사람, 남자인데.”


종수는 그제서야 석율이 말한 의미를 깨달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던 짧은 그 몇 마디가 그에겐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순간적인 분노가 치솟아 오른 탓에 그가 좋아한다며 내뱉은 사람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종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근본적인 것.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에서, 아직도 뒤떨어진 이 현실을.


종수는 웃었다.
이미 자신은 그런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었기에.



“처음엔, 몰랐어. 그저 가까이서 친구로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어. 그 녀석은 경계심이 되게 강해서. 그래서 내가, 그 녀석 친구가 되고 싶은 줄 알았어.”


오기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
석율은 짧게 웃으며 덧붙였다. 그 안에 가득 들어찬 감정을 다 읽고 싶었다. 끼익. 조금씩 앞뒤로 흔들거리던 종수의 그네가 멈추자 이번엔 석율이 앉은 그네가 앞뒤로 움직였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것처럼, 말하기 쑥쓰러운 것처럼, 큼큼, 작은 헛기침도 하며 그는 속삭였다. 웃어보인 종수의 얼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몰라도 석율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쩌면, 종수에게 경계심을 풀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종수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흔들거리는 그네의 줄을 잡지도 않고 그는 제 손으로 굳게 깍지를 끼고 있었다.


“내가 많이 들이댔어. 나 엄청 뻔뻔해서. 걔가 나보고 짜증 진짜 많이 냈는데…뭐,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난 그것도 좋았다. 그 녀석이 진심으로 상대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석율은 웃는 소리를 냈다. 종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찌푸린 제 얼굴도 보여주기 싫었지만, 석율의 웃는 표정도 이번엔 보기가 싫었다. 그 표정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생각만으로도 행복해한다는 것이 너무 눈에 잘 보여서.


“별로 좋지 못한 일로 마주했었지만,…. 그냥 그 땐 막연히 좋다고 느꼈어. 내가 떠들다 할말이 떨어지면 그 녀석이 말도 걸어주고. 그래봤자 ‘배 안 고프냐’, ‘안 졸리냐’, 이런 거였지만.”


“근데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데.”


침묵하던 종수가 말을 걸자 그는 또 다시 웃는 소리를 흘렸다.


“잘 모르겠다. 그냥, 모든게 다. 그 녀석이 날 친구로 받아들이고부터 깨달았지. 내가 녀석을 좋아하는게 정상이 아닐 정도라고.”


“….”


“그 녀석이 날 처음으로 안아주었을 때. 그 때 확신했어. 진짜 이상하게도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이 안았다면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거잖아. 영원히 이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이러면서. 근데 난 그보다도 다음 진도를 떠올리고 있었거든. 이대로 키스해주면 좋겠다, 하고.”


그의 얼굴이 옅은 흰색의 가로등 아래서 붉게 물들었다. 종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이 갈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릴까 걱정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용케 그는 말을 이어갔다. 깍지를 끼고있던 손가락들은 이제 꼼지락거리며 부끄러움을 지우려 애를 쓰고 있었다.


“많이 좋아해. 벌써 3년도 더 지났는데 여전히 좋아한다. 이 정도면 이유를 잊어버릴 때도 됐지. 안 그래?”


그는 마치 속이 후련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반대로 종수의 가슴 속엔 돌이라도 얹힌 듯 묵직한 무언가가 무겁게, 따갑게 짓눌렀다. 아파. 종수는 내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혼자서만 중얼거렸다. 네게 나란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 아파.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종수는 눈을 꾹 감았다. 조용한 종수를 보며 석율은 그제서야 아차 싶은 표정으로 입술을 물었다. 아래로 쳐진 눈썹 끝과 살짝 보이는 이가 입술을 짓씹고, 그 눈엔 일말의 후회가 공존했다. 침묵 끝에 그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내가 더러워?”


“아니.”


종수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 동시에 부정했다. 그러나 그 말을 내뱉고 난 후 종수는 조용히 숨을 골라야했다. 마치 100m를 미친듯이 질주한 듯 숨이 가빴다. 종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석율이 본인조차 끝을 알 수 없는 제 마음을 고백했을 때부터 숨조차 멈추고 었었음을.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파고들 수 있다. 안타깝게도, 빈틈은 없어보였다. 그렇게 느껴졌다.


“너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 안할거야?”


참으로 잔인한 질문이다 싶어 종수는 픽 웃었다. 바람소리처럼 흘리는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의 표정은 진지해졌다.


“…못하는 상황이야?”


종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의 마음에서 틈을 찾을 수가 없으니, 전체적으로, 맞는다고 봐야했다. 못하는 상황. 따라주지 않는 상황. 엿같은 상황.
그런데도 난 그 새끼때문에.


종수는 인정했다. 마음 속에 자리한 가장 큰 공포를. 그것은….


“…좋아한다고 말하면, 두 번 다신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석율이 종수의 말을 듣곤 따라서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너도, 나도. 진짜 겁쟁이들이네.”